동욱이 보아라.
너의 첫번째 편지와 사진을 잘 받아 보았다. 입대하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져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겨울 훈련이니까 봄 가을보다야 춥고 힘들겠지만 한여름보다야 낫다. 나도 30년 전 (67년) 겨울에 바로 네가 속한 23연대에서 신병 훈련을 받았다. 훈련소 담도 없고 두루마리 철조망을 걷어내고 블럭담을 치는 작업이 그 때 했다.
훈련은 전쟁이라는 비정상 상태에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최악의 극기 훈련이므로 힘들고, 비이성적이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이지만 삶과 죽음 뿐인 상태에서 삶을 찾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니까 이것저것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세상이 군이다. 사람이 그렇게도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해 봐야 한다. 배고픔도, 추위도, 졸음도, 억울하고 황당한 처우도 불분명한 선악도 모두 깊이 느껴보고 생각해 봐야 한다. 어디까지나 훈련이니까 실제보다는 더 심하겠지만 너보다 열악한 자도 해낼 수 있는 것이고, 끝이 까마득히 보여 ‘언제 다 마치나?’하고 심란하고 고통스럽겠지만 다 마치고 나면 평생 이야기 거리가 될 추억 만들기에 불과한 잠깐 동안의 삶의 과정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너를 지키시는 신이 보다 강하고 지혜로운 너를 만들기 위한 시련이다 생각하면 아버지도, 삼촌들도 친구들도 다 해낸 것들이랴 생각하면 참을 수 있다.
군은 계급 사회이고 연대 조직 사회이므로 타인의 가치보다는 전체의 가치가 우선되는 곳이다. 타인은 어디까지나 전체를 위한 구성원(요소)에 불과하며, 따라서 타인이 너무 부족하거나 뒤떨어져도 안되지만 유별나게 두드러져도 안된다. 붕어빵처럼 언제나 모두가 똑같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히려 진솔한 인간성을 발견할 수가 있다. 순수한 인간성이 노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의 진면목을 들어내는 것이니까 말이다. 환경이 어렵고 고독하니까 자칫 마음이 약해지고 정신이 나약해지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그것이 잠시의 훈련이지 네 인생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군생활에서는 요령이 좋아야 한다. 꾀부리라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상급자의 요구나 비위, 의도대로 할 수 있을까를 능동적으로 찾아내는 지혜를 말한다. 그 곳 훈련을 마치면 의정부 근처에서 카츄샤 교육(2차)을 또 받을 것이다. 아버지 친구인 전북대 문과대학장 아들이 너보다 1기 앞서서 카츄샤 훈련을 받고 지금은 의정부에서 훈련중이더라. 너보다 더 용약하게 생겼더라만 훈련을 잘 참았더구나.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옛날 어렵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어렵다고 할 수 없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 동생들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네가 잘 훈련을 마치고 더욱 건실한 성인 남자로 믿음직한 남자로 되기를 바란다.
군(훈련) 생활에서 좋은 점은 몸에 익혀 습관으로 하면 네 인생에 큰 보탬이 될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마치지 말고 눈여겨 보아두고, 착실히 익혀두면 언젠가는 엉뚱한 때와 장소에서 네 실력으로 발휘될 때가 있다. 자고로 매사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훈련기간동안에는 그저 안전사고나 병에 주의하여 안전하게 마치면 된다. 네가 훈련을 시작하지도 벌써 3주가 다 된다. 이제 한 달 남았구나. 공휴일과 일요일을 빼면 훈련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하루하루가 피로하고 힘들겠지만 잘 참아내거라. 요사이는 식사가 부족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배고프다고 함부로 이동 매점에서 아무거나 사먹지 말아라. 배고픔도 참아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아버지가-


동욱아!
아빠 편지 답장을 이어 엄마가 글을 띄운다.
저번에는 부대에서 잘 있다는 소식을 받아보기만 해도 안심이 되었는데 오늘은 너의 사진과 당당하게 군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참 기쁘고 자랑스럽구나. 평소에도 늘 의젓하고 재미있고 든든한 아들이었지만 새로운 집단 생활을 통해서 더욱 남자다움과 사려깊은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기쁘구나.
지금은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되었고 어려운 난국을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잘 풀어 나가리라 믿고 우리 각자도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한다면 지금의 고통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믿는다. 지금 이곳 빌딩도 여전하지만 새해가 되면 어떤 변화가 오지 않겠니?
아빠 회사도 환율 폭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지만 아빠의 적절한 판단으로 위기를 넘기고 있고 그 대처를 해 나가시겠지. 동욱아, 열심히 기도해 드리자. 아빠의 바른 믿음을 위해서도 말이야. 동준이도 시간나면 도와주고 있고 요즈음은 시험 중이단다. 동규는 혼자서 결정해 가지고 경신고, 동성고를 선지원 했단다. 들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곳에서나 열심히 할 것을 믿는다.
동욱아! 지금쯤은 야외에서 어려운 훈련을 하고 있겠지. 내가 말했듯이 고되고 위험을 만났을 때 주님을 의지한다면 능히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아들 보내고 다들 운다는데 나는 오히려 편안하고 믿음이 가는구나.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니까.
같이 훈련 받는 원재와 자흥이 기도도 하고 있고 모두를 위해서도 늘 기도한다. 잘 교육받고 무사히 마치고 퇴소식 때 기쁘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하자. 집 걱정은 너무 하지 말고 네가 본이 된다면 동생들도 자연히 잘 따라 줄꺼야. 할아버지께서도 너의 사진과 편지 보시고 기뻐 하셨단다. 그럼 다음에 또 소식 전하기로 하고 이만 줄인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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