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택배 현장

아침 6시 10분, 이미 잠은 깼지만 일어나기 싫은 이유는 오늘도 택배 노동의 현장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택배 개수와 크기만 달라질 뿐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빨리 화장실에서 씻은 후 아침 식사를 대충 챙겨먹고 작업복을 걸친 뒤 아파트 뒷편에 세워둔 트럭으로 걸어가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동을 겁니다. 6시 20분쯤 출발하여 인천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여러 택배 탑차들과 함께 줄지어 택배 물류 터미널에 도착하여 늦어도 50분까지는 제 주차구역에 자리를 잡습니다. 택배 물류 터미널에 도착하면 트럭 짐칸을 열고 후진으로 열을 맞춰 제 트럭 자리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트럭과 트럭 사이의 간격을 딱 맞춰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 좁은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을지 의아해 했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50cm 간격으로 후진주차를 하고 있는 것이 놀랍지도 않습니다.

7시가 되면 터미널을 울리는 컨베이어 벨트 가동 소리와 함께 수백 명의 택배기사들과 분류작업을 시작합니다. 보통 까대기라고 부르는데 컨베이어 벨트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모든 택배 상품의 라벨의 분류코드를 자리에 서서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집어내는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수백 명의 택배기사들과 함께 마치 기계처럼 컨베이어 벨트 양쪽으로 길게 줄을 서서 쉴새없이 움직이는 택배 송장의 대리점 코드를 눈으로 스캔하고 서로 아파트명을 큰소리로 불러주며 벨트 가장자리로 물건을 빼주거나 물건을 내려줍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정신을 다른 곳에 두면 자신의 담당구역의 물건 뿐만 아니라 같은 대리점의 물건을 내리지 못하고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흘러가게 되면 결국 맨 마지막까지 가서 내려지게 됩니다. 그럼 컨베이어 벨트가 반대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려야 하기 때문에 택배 박스를 탑차에 순서대로 정리할 수 없고 적재하는 시간도 길어지게 되어 터미널에서 나가는 시간이 늦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물류 터미날은 벽이 없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매일 4시간씩 서서 까대기를 한다는 것은 야외에서 극한 노동을 하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택배기사의 과로사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전 내내 까대기를 하고 탑차에 적재를 마치고 나면 몸에 진이 다 빠진 상태이지만 이제부터 수백 개의 박스를 배송하러 출발해야 합니다. 이제는 시간에 쫒기며 예상 도착시간을 문자 메세지로 받은 고객들의 독촉 전화를 받으면서 배송지로 출발합니다. 점심은 사 먹을 때도 있지만 배송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의 경우에는 제 배송 구역의 분식집에서 파는 썰지 않은 참치 깁밥을 차에서 허겁지겁 먹고 배송을 시작합니다. 트럭으로 이동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을 고려한다고 해도 배송하는 시간동안 하루 최소 2만 보 이상을 걷게 되는데 무거운 상품을 들고 계단을 오르게 되면 체력 소모가 매우 커집니다. 운동 매니아들의 러닝머신 운동기구나 가을 수확기에는 20kg 쌀, 김장 시기에는 절인배추 박스를 10개씩 저층 아파트 5층에 배송했던 다른 택배기사님들의 무용담이 제 이야기가 될 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녁식사 역시 배송 물량이 많은 날은 제대로 못 먹고 간식으로 허기만 채우고 퇴근 후 집에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여 저녁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마십니다. 빈 속에 막걸리를 한잔 들이킨 후에야 하루의 긴장이 풀리면서 택배기사의 현실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집니다. 실제로 저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같은 터미널이나 골목에 트럭를 세우고 계속해서 박스를 분류하거나 날라야하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고 단 한 순간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쳇바퀴에 올라탄 기분입니다. 내일도 터미널에 나가서 오전에는 지겹고 힘든 까대기를 하고 오후에는 배송을 해야 하지만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도 사고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달 수입으로도 생활비와 여러가지 지출을 하고 나면 마이너스이지만 그래도 저희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얼마 전에 택배기사 한 분이 또 그만 두셔서 제 배송 구역이 더 늘어나면 다음 달에는 수입이 조금 더 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많이 편안해졌고 대화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은 믿겨지지 않지만 1년 가까이 집에서 나가지 않고 지냈던 제가 이제는 매일 바쁜 택배기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천의 한 택배기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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