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믿는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이고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포자기의 의미가 조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즈음처럼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에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태생부터 나의 미래는 어느 정도 결정이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운명학을 21세기에도 과연 학문이라고 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성공한 사람들과 운이 좋은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통계화하고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의미있는 법칙을 발견했다면 분명 이 책에도 배울 수 있는 내용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봤습니다.
저자를 검색해 보니 매우 특이한 이력의 분이었는데 운명학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나이 드신 선생님들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젊은 여성분이셨는데 우리나라 상류층1% 를 대상으로 운명 컨설팅을 하시는 유명하신 분이셨습니다. 사실 다른 말로 하면 점을 보는 분인데 제가 가졌던 점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책 첫 챕터부터 감사하는 습관과 행운 노트를 적어보라는 것부터 사실 신선하긴 했습니다.
동양에서 얘기하는 우주의 기운이나 서양에서 보는 별자리에 따른 태어난 월의 운명 등 누구나 연초에는 재미삼아서라도 올해의 운세를 보곤 할텐데 그것이 반드시 비과학적이거나 비종교적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역사와 문화는 꽤 오래 거슬러 올라갈 것이고 역사의 흐름의 관점으로 보면 현대 사회의 과학이나 민주화된 종교들도 결국 오랫동안 축적된 인간 사고의 발전과 체계화시킨 리더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운명학도 어쩌면 21세기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학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사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서양의 철학자는 인정하면서도 동양의 철학자들은 등한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나도 모르게 사대주의에서 나온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선진국의 기준이 경제 규모와 GNP, GDP 등 계량화된 수치로 정해지고 그와 관련하여 성공의 지표도 돈과 숫자로 정해지기 때문에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운명학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운도 점수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이스라엘의 철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도 직접적인 경험에서 오는 행복을 숫자로 평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IT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우리의 삶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행운을 믿고 있고 그게 신이 준다고 생각하건 조상의 은덕이나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든 간에 오늘도 저는 운이 좋은 택배기사라고 생각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배송하고 운전중에 책읽고 공부하면서 적은 소득이지만 매일 투자하면서 더 큰 운을 불러오는 삶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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