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평전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 수많은 인파가 일제 총리이자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맞이하러 모여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와 러시아 수비병이 사열해 있는 곳에 대한제국의 독립군 소속 안중근 중장이 미리 거사를 위해 준비한 총으로 2발을 명중하여 치명상을 입혀 사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유명한 사건을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많은 역사가들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그 시간은 대한민국의 독립뿐만 아니라 범인류적인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로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복속시키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것이 정당화되는 시대에 자유정신을 고취하며 독립의 햇불을 밝히는 순간이었습니다.

헌병들에게 체포된 후에 대한독립만세 (코레아 후라)를 외쳤을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을 안중근 의사의 당당한 얼굴과 그의 목소리가 상상속에서 떠올랐습니다. 총성이 울리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충분히 도망칠수도 있었지만 그는 순순히 체포당하고 구속후 그를 심문하는 검사 앞에서도 뚜렷한 논리와 당당함으로 오히려 검사를 꾸짖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일제에 맞서 교전중인 대한제국의 독립군 중장으로서 적장을 사살한 군인으로서 만국법에 따라 포로로 심문을 해야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 생각해봐도 통쾌한 일격입니다. 사형장에서 처형을 당할때까지도 그의 행동과 마음가짐은 독립투사로서 흐트러짐이 없었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깨끗하게 죽음을 택하라는 그의 어머니의 편지는 위대한 영웅 뒤에는 그를 키운 부모의 정신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역시 명문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위대한 정신은 어떠한 멋진 건축물이나 큰 전쟁의 승리에도 견주어 손색이 없는 무형의 역사적인 가치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독립운동이 더욱 거세질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반인륜적으로 그의 시신까지 훼손하고 은폐했을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고 유가족이 겪었을 핍박 역시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저항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치하 36년의 치욕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희생당하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안중근 평전을 읽으면서 제 안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역사의식을 다시 한번 고취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안중근 의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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