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하는 진짜 이유

2019년에는 매일 반복되었던 택배 배송업무를 하면서 육체 노동의 어려움보다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막막함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택배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택배 분류작업도 서툴고 주소를 잘못 읽어서 오배송 실수를 하거나 짐칸에 택배 박스가 운전 중에 무너지면서 물건을 찾기 어렵게 되는 등, 초보 택배기사가 겪게 되는 과정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통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이제 경력 단절은커녕 영원히 내가 일했던 분야로 복귀는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웠지만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배송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존감 상실이라는 고상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사회 밑바닥 생활은 마치 컴컴한 터널을 매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터널의 끝이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괜찮았겠지만 매일 과로로 인해 밤늦게 막걸리를 마시다가 쓰러져 자고 다음날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반복적인 삶에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터미널로 출근하여 7시에 지이잉하고 컨베이어 벨트 가동을 알리는 기계음을 들으면서 택배 분류 작업을 손으로 시작하면서 다시 기계의 일부가 되어 오늘도 무사히 사고없이 배송을 마치기만을 바라는 노동자의 삶에서 희망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처음 택배 구역을 배정받고 최소의 물량으로 시작하여 월 200만원정도 월급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후 한두 명씩 택배를 그만 두면서 저에게 배정된 구역이 늘어나자 물량이 많아지면서 월급도 400만원대로 올랐지만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리려면 혼자 배송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침 7시부터 늦은 시간까지 주 6일을 배송해도 하루의 배송량에는 한계는 있었고 배송 구역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대리점주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로 부부가 함께 택배 배송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팀웍이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육체 노동을 함께 하는 일이라 배려와 이해가 없으면 함께 일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택배를 같이 시작했던 기사님이 친한 친구가 함께 하다가 싸우고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점차 배송 물량을 늘려가면서 도우미를 고용하여 아파트 동 앞에 택배 물건을 내려주면 문 앞까지만 배송하는 업무를 맡겨서 업무 효율을 올리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노인분들을 고용하게 되면 급여의 일정 부분을 보조받는 제도도 있었습니다.

한진택배에서는 인천 동춘동, 연수동동과 옥련동에서 배송을 했고 CJ 대한통운에서는 주안8동 골목과 저층 아파트에서 배송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있었던 참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택배 배송 초기에는 골목이나 주차 중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서 접촉 사고를 내거나 좁은 골목의 건물 외벽 에어컨 실외기를 파손했던 일도 있었고 짐칸의 문이 돌풍에 열리면서 지나가던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거나 수리를 하는 경우에는 10층이 넘는 층계를 걸어오르거나 다른 편 엘리베이터로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서 다시 층계로 내려와서 배송했던 일, 실수로 오배송 한 아기 치즈 제품을 술안주로 먹고 나서 오리발을 내밀다가 CCTV로 확인을 해야했던 주민과의 마찰, 구정 선물로 보낸 명품 김치의 주소 오기입으로 인한 주민 간의 다툼, 20Kg 짜리 쌀 열 가마를 옆 동으로 오배송하여 다시 가져다 드렸던 일이나 김장용 절임배추 다섯 박스를 주민이 주소를 잘못 기입하여 다시 가져다 드린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 택배 사업의 구조를 알게 되고 대리점주의 역할과 배송 기사들의 고충을 직접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택배에는 배송뿐만 아니라 반품을 수거하거나 집하 계약을 맺고 물건을 발송하는 업무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업무만 담당하는 택배기사들은 택배 회사와 계약이 되어 있는 거래처에 방문하여 새 상품들을 수거하여 택배 터미널로 가져오는 업무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하루에 수백 군데의 배송지를 방문하면서 택배 배송을 하는 것보다는 정해진 거래처 몇 군데에서 한번에 수 십개 또는 수 백개의 상품을 수거하는 일이다보니 업무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일반 택배기사들은 아침 일찍 물건을 분류하여 오전과 오후에 배송을 하고 반품 물건을 싣고 와서 터미널에 두고 퇴근을 하는 것이 보통 일과이지만 집하 기사들은 오후 시간부터 상품을 수거하여 터미널에서 상차까지 마치면 퇴근 시간이 늦다는 단점은 있었습니다. 주로 대리점주가 배송 구역 안에서 영업을 하여 신규 거래처를 찾거나 다른 택배를 사용하는 고객사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 법인 계약을 맺고 집하 담당 기사를 고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객사의 사업이 잘 되면 잘 될수록 택배 물량이 늘어나게 되므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고객사를 발굴하거나 이미 택배 물량이 큰 고객사의 요구 조건을 맞춰주면서 거래처를 뺏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리점 소속으로 택배 배송만 하는 것은 수입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택배 집하 쪽으로 관심을 갖고 살펴봤지만 개인 자격의 택배 기사로서 신규 고객사를 유치하거나 기존 거래처가 있는 회사에 가서 계약을 바꾸라고 영업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택배 배송을 하면서 그런 기회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근 마켓에서 거래한 가구를 옮겨주거나 주말에는 용달 매칭 앱을 통해서 지방까지 물건을 옮겨주면서 월 수입을 늘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말에 쉬지 않고 운전을 하다 보니 결국 주 중의 택배 배송 중에도 실수를 하게 되고 실수는 벌점으로 이어져 경고를 여러 번 받은 후 결국 퇴출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찮게 당근 마켓에서 새벽 반찬배송의 지역 대리점을 권리금을 받고 판매한다는 황당한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목이 좋은 카페나 식당을 권리금을 받고 거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근 마켓을 통해서 판매 광고를 한다는 것이 좀 이상해서 판매자와 연락해서 설명을 듣고 본점과도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본점과 협의가 잘 되어 인천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한 대리점 권한을 사면서 택배배송을 그만 두고 새벽 반찬배송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배송의 건당 제가 받는 배송비도 일반 택배에 비해서 훨씬 높았기 때문에 마케팅과 홍보를 잘 하면 인천 전 지역을 대상으로 대리점주로서 사업을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새벽배송 및 대리점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 6일을 새벽 5시부터 인천 전 지역을 돌아 평균 100km 이상을 주행했는데 그 덕분에 인천 거의 모든 동네를 다 방문해 봤습니다.

그러나 수면 시간을 줄이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지방 용달을 하다보니 졸음 운전으로 몇 번 크고 작은 사고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10월, 주말에 지방에 용달 배송을 다녀온 후 그 다음날 새벽 배송 중 졸음 운전으로 아내 자동차를 인천 선학동 지하차도의 벽에 들이박았던 대형 사고가 기억이 납니다. 자동차의 우측 면이 코너로 휘어진 벽에 부딪히면서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측면이 갈리고 타이어가 터졌는데 다행히 새벽 시간이라 차가 도로에 없어서 연쇄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가까스로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길바닥에 앉아서 망연자실하던 때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저는 새벽 배송을 계속 하기 위해서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부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직접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하고 사고 난 자동차를 다시 운전해서 배송을 마무리했었는데 자동차 사고보다 새벽 배송이 지연되어 고객 불만이 있을까봐 그게 더욱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사업이었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당근 마켓에서 무료나눔을 하는 가구들을 옮겨주면서 배송비를 받기도 하고 중고 물품을 팔기도 했습니다. 우연찮게 무료나눔을 한 대형 프린터를 배송 하다가 만난 분이 소블링 에스프레소 액상 커피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고 때마침 기존 택배 회사에서 다른 택배 회사로 바꾸려고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여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국 택배 집하 계약을 유치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택배 물량이 크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시기가 장기화 되면서 오프라인 커피 매장의 매출이 줄고 점차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여 그 성장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저는 이 거래처를 설득하여 택배 집하 계약을 확보하고 송도 담당 롯데택배 배송 기사를 찾아 대리점을 소개받은 후 CJ 대한통운에서 나오자마자 롯데택배 집하 기사로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은 지금 돌아봐도 너무 놀라운 일이었고 하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그런 완벽한 타이밍은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그 후 새벽에는 반찬 배송을 한 후 낮에는 송도 택배기사의 도우미로 택배 배송을 하고 저녁에는 택배 집하를 하는 1인 다역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새벽 배송을 1년동안 하면서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저는 조금씩 변화되었는데 캄캄한 밤에 서서히 동이 트면서 떠오르는 붉은 아침 태양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고 반찬을 주문해 주신 고객님께 감사하게 되었으며 누군가의 아침 식사를 배송한다는 책임감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새벽 배송 업무가 일상화되어 여유가 생긴 이후에는 인천시를 한바퀴 돌고 마지막으로 영종도에 있는 고객에게 마지막 배송을 마친 뒤 바다를 가로지르는 인천대교를 건너면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하고, 멋진 바다 풍경과 바다를 비추고 있는 태양의 모습을 매일 저의 몇 안되는 팔로워들에게 방송하면서 즐거운 퇴근길이자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출근길의 기록으로 남겼는데 가끔은 외국 친구들이 라이브에 들어올 때는 영어로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전세계에 한창이었던 2020년 11월에는 오랜만에 한 미국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고라의 공동대표와 화상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2021년 1월부터는 아고라의 사업개발 담당이 되어 새벽에는 반찬을 배송하는 택배기사가 낮에는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을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를 인터뷰 했었던 토니왕 공동대표와는 택배 배송 중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영상 통화로 만났는데 사실 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냥 택배기사의 복장으로 헤드폰을 끼고 휴대폰으로 접속을 했었습니다. 사실 취업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고 그동안의 경력 단절로 당연히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현재 택배기사가 되기 전에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실패했던 내용을 가감없이 전했는데 제 이야기를 듣던 그는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랑 비슷한 자신의 지인이 상해에 있다고 하면서 코인 비즈니스는 매우 위험하니 다시 IT 업계로 복귀해서 아고라의 한국 진출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 너무 감사해서 회사에서 책정한 컨설팅비의 반만 받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6개월동안 계약하고 한국시장의 가능성과 저의 성과를 보자고 하며 회사에서 책정한 금액으로 저를 프리랜서로 채용했습니다.

그 다음해 2021년 1월부터 저는 아고라의 한국 사업개발 담당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2월에 전세계적으로 클럽하우스라는 실시간 소셜 오디오 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도 상륙했고 핵심 솔루션을 제공한 아고라의 실시간 소통 플랫폼이 중국의 어느 IT 기자에 의해서 기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너도나도 할 것없이 아고라 기술을 활용하여 클럽하우스와 같은 실시간 기반의 웹서비스나 앱을 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온라인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실시간 기반의 서비스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택배기사였던 저는 이미 그 전부터 택배 물량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그런 시대가 되었음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3월부터 아고라 기술문의 및 계약이 늘어나더니 판교에 위치한 국내 최대 IT기업에서 연락이 오더니 몇 주 후에 구매 부서에서 바로 계약을 하자고 하여 거짓말처럼 큰 계약건이 성사되어 얼떨떨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IT 업계의 큰 화두가 되더니 10월 미국 페이스북이 갑자기 회사명을 메타로 변경을 하더니 국내에서도 수많은 메타버스 프로젝트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 중 대부분이 아고라의 실시간 소통 플랫폼으로 음성통화나 영상통화 기능을 개발하면서 저는 계속 고객사들로부터 불려 다니면서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마치 과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플랫폼 전환 시기에 모바일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큰 흐름을 탔던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또 한번 실시간 플랫폼으로의 전환에서 큰 흐름을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전 엔젤 투자를 했었던 게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지분을 2020년 9월 경에 회수하면서 투자 시드머니를 마련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동학 개미 투자자가 되었고, “자산=자본 + 부채”라는 기본 회계 원리를 바탕으로 자산을 늘리기 위해 현재 나의 현금수입 능력, 현금 지출의 흐름, 그리고 투자의 목표 수익률을 고려해서 용달 배송으로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매달 나가는 카드값 지출을 막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투자하여 자산을 늘리기 위해 현금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용달 배송으로 현금을 벌면 즉시 암호화폐나 주식에 투자한 뒤, 지출일에 필요만큼만 자산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자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면서 투자를 일상화 했습니다. 투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떤 일을 해도 행복해지는데 더 큰 가치 소비를 하기 위해 일을 기쁘게 하게 됩니다. 버려진 박스가 현금이 되고 현금이 암호화폐가 되어 디지털 세상에서 더 큰 가치로 불어나는 놀라운 과정은 마치 MMORPG 게임에서 자원을 채취하여 무기를 사서 업그레이드하고 다시 강화하여 비싼 값에 파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럼 박스가 게임에서 전투 후 받는 보상 코인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나의 월렛의 늘어난 숫자에 감사하며 행복해집니다. 

과거의 나의 위치와 영광을 그리워하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던 저의 모습을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쓸데없는 자기 연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천 택배기사라는 ‘부캐’가 오히려 더 정감이 가고 매일 커피 상품을 집하하며 주민분들의 물건을 옮겨드리면서 ‘행복을 배송하는 일’에 작은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벽배송 중에 뜻밖에 문 앞에 놓여진 간식과 손글씨 쪽지를 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에 온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택배 집하 일을 마치고 저녁 11시까지 송도 주민분이 당근마켓에서 거래한 책장을 옮겨드리고 왔는데, 밤늦게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하시며 컵밥을 주시면서 혹시 예수님 믿냐고 물어보시는 주민과의 만남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행복이라면 믿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폐자원 센터에 고철이나 폐박스를 수거해서 팔면서 사장님이 직접 종이컵에 타주시는 달달한 봉지 커피가 어떤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풍미 있는 에스프레소 커피보다 맛있다고 하면 믿기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저희 작은 아들이 아빠는 왜 계속 택배를 하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행복을 배송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답을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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