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알쓸신잡에서 유명해진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님의 여러 가지 강의를 엮은 책이었습니다. 마치 그의 재치있는 입담과 유익한 강의를 한번에 핵심만 골라서 듣는 것 같은 종합 선물셋트 같은 책으로 그가 어떻게 물리학자에서 뇌과학자가 되었는지그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때는 천재들의 무덤이라는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면서 회의에 빠지게 되었고 프랙털 기하학을 강의하던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복잡계 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비효과처럼 단순한 원리를 통해서도 복잡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공부하는 학문인데 복잡계 과학을 뇌과학에 적용해서 사람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신분석학이나 영혼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과학적으로 해석을 하려는 그의 학문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벌어지는 흐름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 중에 후회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인간이 과거에 내린 결정으로 인해 현재의 결과를 비교 분석하면서 후회를 하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고등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미래를 끊임없이 예측하여 실제 결과와 다를때 실망하고 그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후회인데, 그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을테고 저 역시 그 때 다른 선택을 할껄하고 후회할 때가 있지만 시뮬레이션 능력으로 다음에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의사결정과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 중 마시멜로와 스파게티로 탑을 높이 쌓는 경기가 있었는데 MBA 학생들은 통성명하고 회의해서 계획을 세운뒤 쌓았지만 계획없이 바로 실행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여가며 쌓았던 유치원생에게 패배했다는 사례에서 좋은 의사결정이란 적절한 시기에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후 잘못된 부분은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실험 결과는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도전과 실패를 통해 대기업을 능가할 수도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결정장애(?)가 있는 세대를 Generation Maybe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사소한 결정을 내릴때에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 스스로 결핍을 느끼기 전에 모든 것을 알아서 준비해주고 결정해 주는 부모 때문에 자신이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많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더욱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공부를 스스로 해야겠다는 결핍을 느끼기 전에 꽉 짜진 학원 스케줄로 인해 결정을 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작년 제 큰 아이와 상의하여 학원을 그만두게 했는데 놀랍게도 그 결과는 더 좋았고 최근 고등학교 진학 결정도 함께 하여 인천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장애는 사실 심한 단계라서 결정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이라도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고 특히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이 자기주장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하는데 제 경험상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결정을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결정부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혹시 우울증이라면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중 하나가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마음이 가장 잘 나타나도록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훈련이었는데 정교수님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미술관에서 본 달리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작품이 바로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좋은 예로 언급했는데 저도 그림이 있는지 처음 검색해서 찾아보니 정말 창의적이면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책을 읽어왔다는 그의 박식함과 과학적인 논리와 명쾌함으로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고 강의 중간에 교수님의 개인 에피소드 중 터키에서 컨퍼런스 장소를 찾지 못해 생긴 재밌는(?) 일을 통해 탐험가의 자세로 나만의 인생의 지도를 만들라는 그의 조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생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트레이딩하고 북리뷰를 하나 더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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