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음 속에서

자칫하면 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2월부터 시작되어 1년 넘게 장기화되었습니다. 영화같은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고 군사시설을 시작으로 민간지역에서도 미사일 폭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수백명이 생겨났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어린 소녀의 영상은 그 참혹한 현장을 여과없이 보여주면서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갖게 했습니다. 근접 국가인 폴란드로 피난을 가는 많은 차량 행렬과 총을 들고 항전하겠다는 시민들의 모습이 겹치며 저라면 가족들을 피난시키고 나가서 싸우러 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면서, 비정한 국제 사회의 외교 관계나 러시아 푸틴 독재자의 야욕, 그리고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문외한인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그의 비전문가 참모진들의 위기 대응 능력 등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도 들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입장에서 당장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해야하는 막막함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무기력함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 미국의 한 유튜버의 이 상황에 대한 무능력한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책임론과 그를 선출한 미국인들에 대한 비난이 불편하면서도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외교 마찰 속에서 바이든은 결국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한 발 물러나서 수수방관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명 트럼프와 푸틴과의 외교적인 관계 때와는 다른 양상인데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부유층들의 자산의 85%가 모두 러시아 밖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경하게 제재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이상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한 유튜버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분석을 찬찬히 들었는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침공하면서 모든 통신망과 가스관등은 점령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조심스럽게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점과, 언론을 통해서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미국은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서방국가들 역시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엔에서도 인도와 중국 그리고 사우디의 기권표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상 밖으로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러시아 시민들을 비롯한 전세계 여론이 러시아를 비난하는 분위기로 바뀌자 EU 국가에서도 무기 구입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고 국제 송금 시스템인 SWIFT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는 등 갑자기 적극적으로 입장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지기 전에 왜 적극적으로 제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자국 내의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이슈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달러에 대한 수요 증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 금리를 크게 높이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도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이웃집 불구경하면서 불은 끄지 않고 나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냉정한 국제 외교 관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소수의 강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약자가 희생과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 전쟁을 통해서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역사가 판단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체에서는 매일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보도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얼마 남지 않았던 대통령 선거를 앞 둔 대선후보 간의 전쟁같은 설전 그리고 예기치 않게 고등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큰 아들의 검사 양성 판정으로 인한 가정에서의 혼란함 등, 너무나 많은 소음으로 인해 마음이 번잡한 가운데 평소에 존경하던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소리와 선거 유세 트럭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귀따가운 선거 로고송에 비해 그의 마지막 인터뷰에서의 육성은 가장 작은 목소리이지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평생 무신론자로 살아오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손자와 딸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독교로 회심을 한 후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쓰셨는데 마치 한국의 C.S. Lewis 와 같은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필력은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고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창의적이고 화합하는 힘이 있어서 읽다 보면 나의 숨겨져 있는 창의성을 발견하게 되거나 상대방과 함께 무언가 나누고 싶어집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어떤 관점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셨을지 궁금하여 최근 인터뷰하신 내용을 살펴보다가 놀라운 내용을 발견했는데 인간이 혼자를 감각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무엇이든 거대한 숫자로 환원하면 끝난다는 말씀과 함께 한 명을 죽이면 살인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천 명을 죽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답변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마음이 여려서 앵무새 한 마리 못 죽였지만 가스실에서 유대인을 대학살했다는 대목에서 러시아 푸틴도 결국은 인간성에 장애가 생긴 독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자신의 최측근과 독대할 때도 길이가 긴 탁자의 양 끝에서 만나는 외신 보도를 보면서 스스로 고립시키면서 인간성을 상실한 한 사람이 러시아의 옛 영광을 찾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져 이런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인 리더가 인간성을 상실할 때 인류 역사에서도 항상 잔인하고 끔찍한 전쟁이 났던 것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것만큼 나의 마음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어령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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